[퇴사병 일기] #1: 점점 더 분노를 참기가 힘들다.

우울증, 화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나의 사회적 인격을 내려놓고 쓰는 일기.


얼마 전 퇴근 길에 건너편에서 내 앞으로 끼어들어 30키로로 기어가는 제네시스 때문에 너무 화가 나서 진짜 말 그대로 광분해서 욕을 했다. 사실 제네시스에게 그렇게 분노를 느끼는 건 옳은 일이 아니다. 이건 모두 회사 스트레스가 제네시스에게 표출되었을 뿐이다.  




현재의 상황

지금 다니는 회사는 정말 시스템이 놀랍다. 


부품 회사인데, 개발 단계부터 함께 참여해서 우리 제품만이 그 완성품에 쓰이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제품 개발 단계에서 우리 제품이 쓰이도록 하는 것이 "영업"이라고 한다. 이제까지 내가 알던 영업과는 꽤 많이 다른 정의였다. 

어쨌거나 영업팀은 열심히 일을 해서 수주를 따온다. 그러니까 앞으로 생산되는 그 모든 완성품에는 우리의 부품이 들어가는 것이다. 

이제 그 제품을 생산하는 하청 업체들이 우리 회사에게 발주를 넣는다. 그리고 우리의 케파와는 상관없이 완성제품의 생산 라인이 서지 않도록 그들이 요구하는 모든 수량을 맞춰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재고를 보유하지 않는다. 현금 흐름과 무슨 회계적 어떠한 이유로 그러한 것 같다. 그냥 오늘 생산해서 내일 출고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니까 모든 문제는 1) 과도한 영업, 2) 케파 부족 3) 재고 미보유. 이렇게 3가지로 이루어진다. (정말 끔찍한 회사가 아닌가?)

 

케파는 10인데 발주를 100을 받는다. 여기서부터 이미 시스템이 망가져 있다. 그 제품엔 우리 부품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발주를 거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발주가 100이 들어오니 업체별로 조금씩 나눠서 출고한다. 미납이 90개가 생긴다. 다음 달에 또 100의 발주가 들어오고 미납은 180 이 생긴다. 


그리고 비극적으로 이런 미납에 관련된 모든 화살은 우리 팀에게 온다는 것이다. 


과도한 영업을 한 영업팀은 이 스트레스에서 자유롭고, 생산을 제대로 하지 않는 생산도 자유롭고, 생산 지시를 내리는 PCL팀도 이 모든 것에서 자유롭다. 오로지 재고를 업체별로 분배하고, 출고팀에 출고를 지시하는 우리에게만 미납이 중요하다. 액받이 무녀처럼 온갖 괴롭힘과 시달림은 우리 팀에게 돌아온다. 


"왜 물건을 안주냐!" 

→ 생산을 안 했으니까!! 왜 생산을 안 했느냐고? 케파가 부족하니까!

"이번 주에 몇 박스 줄 수 있냐!"

→ 생산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고, 내 업체에 분배가 얼마나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얼마나 보내줄 수 있는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팀 내에서 분배도 제품군 별로 분배 담당자가 있고 그들이 업체 별로 알아서 분배하고 있다. 나는 심지어 분배에 참여하지도 못한다. 몇 개를 분배"받을 지" 나조차도 모르는 상황이다.


거기다 미납이 엄청 쌓여있고 생산은 소량이니 생산되자마자 모든 업체 담당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분배해 달라!"고 한다. 결국 업체에게 "7일에 생산됩니다"라고 말한 들, 생산분을 공급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생산을 1000K를 했다고 하자. 내가 담당하는 업체는 100K를 요청했다. 그렇지만 이걸 요청한 업체가 너무 많다. 


오늘 6박스가 입고 되었다. 이걸 원하는 업체도 10군데 정도 된다. 내가 담당한 업체에서 요청하는 최소 수량이 6박스. 근데 이것도 오늘까지의 요청 수량이고 내일 추가 3박스를 요청한다. 6박스 내가 가져갈 수 있나? 그럴리가! 다른 업체들은 내가 담당하는 업체보다 더 메이저 업체고, 최소 요청 수량이 10박스 이상은 될 것이다. 나는 이제 업체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표출하지 못한 분노를 품고 사는 자

이렇게 시달리다 보니 매일이 분노에 차 있다. 내가 잘못은 아닌데 끊임없이 내게 "이유"와 "원인"과 "해결책"을 찾는다. 나는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는 수 밖에 없다. 

내 잘못이 아니지만, 이 모든 것은 개인의 재량인 것이다. 생산팀에 내가 필요한 아이템을 우선 생산하도록 푸쉬하는 것, 생산된 물량은 내 업체에 우선 배정되도록 하는 것, 그래서 업체의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모두 개인의 재량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치열함과 얍삽함이 없다. 

나에게 맞지 않는 일을 하느라 용을 쓰고 있는 데, 성과는 미미하다. 자괴감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을 만든 회사를 원망한다. 그리고 결국 이런 회사를 나 자신에게 분노한다. 


이렇게 살다간 화병으로 죽든, 차로 처박든, 아주 끔찍한 결론에 이르리란 것. 


매일 사람인을 뒤적인다. 여전히 좋은 일자리는 없다. 연봉을 포기하면 된다. (연봉을 포기하더라도 날 고용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이런 연봉을 받기 위해 노력했던 지난 시간들이 떠오른다. 


"내 커리어의 무덤이 이곳이라니!"